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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역대 제왕릉의 이해

태조 건원릉

정종 후 릉

태종 헌 릉

세종 영 릉

문종 현 릉

단종 장 릉

세조 광 릉

예종 창 릉

성종 선 릉

연산군묘

중종 정 릉

인종 효 릉

명종 강 릉

선조 목 릉

광해군묘

인조 장 릉

효종 영 릉

현종 숭 릉

숙종 명 릉

경종 의 릉

영조 원 릉

정조 건 릉

순조 인 릉

헌종 경 릉

철종 예 릉

고종 홍 릉

순종 유 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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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존덕종경릉

추존원종장릉 추존진종영릉 추존장조융릉 추존익종수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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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원은 왕족의 무덤을 가리키며 그 중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으로, 그리고 왕세자와 왕세자비, 왕의 사친의 무덤들을 원이라 칭한다. 능원 이하의 무덤들은 모두 묘가 된다. 

  제22대 정조가 승하하자 건릉이라는 능호로 불렸으나, 왕세자 때 폐세자 되어 죽임을 당한 생부 사도세자의 무덤은 영조 때 수은묘로 불렸고 정조 때 영우원과 현릉원으로 격상되었으며, 그 후 융릉이라는 추존 왕릉까지 추숭되기에 이른다. 왕족 중에서도 대군일지라도 왕세자가 아닐 경우에는 묘로 불려졌으며,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의 경우는 능원이 아닌 묘로 불려지고 있는 데서 능, 원, 묘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능, 원, 묘에 관련된 조선왕조 왕족의 무덤들은 모두 109기에 이른다. 그 중 능이 44기, 원이 13기 그리고 묘가 52기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왕이 승하하면 국장을 관장할 임시 기구인 도감 (빈전도감: 장례일까지의 염습, 성빈, 성복 등 진전에 관한 일을 담당. 국장도감: 장의에 필요한 재궁, 거여, 책보, 복완, 능지, 명기, 길흉, 의장, 포연, 제기, 제전, 반우 등의 의식과 절차를 관장. 산릉도감: 현궁과 정자각, 비각, 재실 등 봉분조성과 부대시설에 관한 일을 담당.)들이 설치되고 3개월에서 5개월에 이르는 국장 기간 동안 왕릉 터가 상지되었다. 이때 동원된 다수의 풍수지관들과 함께 대신들은 한양 주변 백리 안팎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풍수로서 판단하여 천거된 후보지는 조정에서 논의를 거쳐 재위 왕의 결정으로 정해졌다.(실제는 80리였고, 당시 10리는 5.2km였기에 41.6km에 해당되는 행보거리였으며, 오늘날 경복궁에서 수원정도가 된다.)



    이때 택지된 조선 왕릉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먼저 배산임수조건으로 왕릉 뒤쪽에 있는 배산은 바람을 감추는 장풍조건을 갖추어야 하며, 임수에 해당되는 왕릉 앞쪽의 물줄기는 생동하는 기운의 방위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장 금기시했다.

  풍수를 텃자리 조건으로 삼은 조선 왕릉들은 단릉(왕이나 왕비의 봉분을 별도로 조성한 단독의 형태 ), 쌍릉(한 언덕에 나란하게 왕과 왕비의 봉분을 마련한 형태), 삼연릉(한 언덕에 왕과 왕비, 계비의 세 봉분을 나란하게 배치한 형태), 동역이강릉(하나의 정자각 뒤로 한 언덕의 다른 줄기에 별도의 봉분과 상설을 배치한 형태), 동원상하봉, 합장릉(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형태)양식을 보여주면서 모두들 우상좌하(우측에 왕, 좌측에 왕비)라는 매김질과 함께 유교예제를 고수했던 것이 조선 왕릉의 특성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양식이건 능역의 들머리에는 홍살문(홍살문은 홍문이라고도 불리는데, 본래 궁전, 관아, 능, 원(세자나 대군, 공주 등의 묘) 등의 앞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신성한 곳을 알리는 문입니다. 한자로는 홍전문이라 표현하는데, 형태는 30자 이상되는 둥근 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는 붉은 살을 쭉 박았습니다.)이 서 있고 이러한 홍살문 좌측에는 능행 때 절을 하는 배위가 조성되어 있다.

<조선왕릉 상설도>


  절을 마친 왕은 홍살문을 통하여 정자각에 이르는데 홍살문과 정자각을 연결하던 돌길을 참도(홍살문을 들어서면 정자각까지 긴 돌길인 참도가 펼쳐져 있습니다. 참도는 주의 깊게 살펴보면 왼쪽 부분은 한 단을 높게만들었고 , 오른쪽 부분은 단을 낮게 만들었습니다 . 이유는 신성한 정령이 다니는 왼쪽부분은 한 단을 높게 만들었고 , 오른쪽 부분은 단을 낮게 만들었습니다. 신성한 정령이 다니는 왼쪽 신로부분과 사람이 걸어가는 오른쪽 인로 부분을 분리해 놓은 것입니다. 삼각형이나 사각형 모양의 얇은 돌[박석]을 깔아 반듯하게 조성한 참도는 왕릉의 신성함을 배가倍加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라 한다.



 정자각(정자각은 왕릉이나 원의 앞에 있는 제전으로 건물 형태가 '장정 정(丁)'자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명명된 명칭입니다. 오른쪽과 왼쪽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데, 제향을 하는 곳이기에 제례 의식에 따라 동쪽으로 올라가고 서쪽으로 내려오는 동입서출의 의례를 따랐습니다. 건물의 구조는 일반적으로 정면 3칸과 측면 1-2칸 정도이고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건물 내에는 본래 신좌를 두고 오향제나 한식제를 지내왔습니다 )은 능제를 지내는 민묘의 상석과 같은 기능을 담당하며 정자각 좌측의 비각은 왕릉의 묘비를 안치하기 위한 조성물이다.



  비각 앞쪽에는 능제를 지낼 때 필요한 제물을 준비하는 수복방이 그리고 정자각 우측, 뒤쪽에는 축문을 태워 묻는 예감이 눈에 띈다. 정자각 뒤쪽으로는 작은 동산 모양을 흙더미로 조성한 강이 있으며, 강은 조선 왕릉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조선 왕릉에 있어서 강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풍수상 땅속을 흐르는 생기는 흙을 몸으로 삼기 때문에 생기의 몸, 곧 생기의 저장탱크 위에 왕릉 봉분이 올라타고 있어 생기를 가장 많이 받을거라는 풍수 승생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풍수 시각이 그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일반 무덤들과는 달리 높은 권좌에 등극한 왕처럼 높은 강을 권좌로 삼아 등극산 왕릉을 보여주는 시각적 효과의 유교 왕조 통치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강을 사초지라고도 부르며, 사초지 위에 오르면 장대석으로 부르는 긴 돌들이 사각형 모양을 이루며 놓여있다.



  이러한 장대석 위쪽은 능원으로서 능원 위에는 석인과 석마 그리고 장명등이 차려져 있고 석인은 문인석과 무인석으로 나누며 문치주의를 내세웠던 조선왕조 특성상 무인석보다 문인석을 한 단 더 높은 장대석 위에 매김질시켜 놓았다. 장명등은 통상 문인석 앞에 놓여 있으나, 풍수 형국이라는 이유에서 정자각 쪽으로 밀려 나갔던 것은 철종 왕릉에서 볼 수 있다.
 

<조선왕릉 석물설명도>

  
  능원은 장대석으로 3단계로 구분되며, 그 중 초계라고도 부르는 가장 높은 상단에는 승하한 왕의 침전이라는 능침이 자리하는데, 능침 주변3면에는 곡장이라 하는 돌담들이 조성되어 있다. 곡장 안에는 석호와 석양들이 능침을 호위하고 능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왕릉 봉분을 병풍처럼 사대석이 휘두르고 있기에 이를 흔히 병풍석이라 하기도 한다.

  병풍석 외곽을 다시 휘두르는 난간석과 병풍석은 초기 조선 왕릉 양식의 특징이었으나, 제7대 때부터는 풍수상 이유에서 병풍석을 생략한 난간석 왕릉들이 전통 왕릉의 양식으로 내려오게 된다. 곡장으로 둘러싸인 능침 가장 앞쪽 양편에는 각각 망주석이 세워져 있으며, 봉분 앞에 있는 혼유석인 석상은 혼령이 앉는 의자라는 용도를 담당하고 있다. 조선왕릉 능역 밖에는 왕릉을 관리하는 재실을 두어 종9품 참봉과 함께 다수의 인원을 상주시켜 놓았다.



  이때 왕릉 관리를 근처의 사찰을 지정하여 운영하게도 했으며, 해당 사찰은 원찰로 불려졌고 건원릉의 개경사(지금은 흔적도 없다), 정릉의 흥천사, 영릉의 신륵사, 광릉의 봉선사, 정릉의 봉은사 등의 원찰들은 숭유배불이라는 조선왕조 당시에도 선비들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을 만큼 권력을 지녔다



  왕릉 관리를 충당키 위한 내용은 <능원묘위전>을 보면 약 80결이 정해진 규모였으나, 제4대 세종 왕릉은 180결에 이르고 제20대 경종 왕릉은 21결 그리고 제9대 성종 왕릉과 제11대 중종 왕릉은 1결도 없었던 것에서 보아 조선 왕릉 관리는 무소불위의 권력 위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참고로 조선 왕릉 능위 전 80결 기준은 오늘날 밭 24만 평에 해당되었고 이를 수조권으로 환산해 보면 쌀 약 480가마에 해당되는 양으로 오늘날 화폐 가치로 칠 때 약 1억원에 달하는 경비가 왕릉 1기의 예산이었다고 볼수 있다.
 



<사진으로 보는 조선왕릉 배치와 석물 >